241127(수)
1. 나무들의 밤
화요일 늦은 밤부터 눈이 내렸다.
사람들이 새벽부터 부지런했던 것 같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웬만한 찻길과 인도 위의 눈이 치워져 있었다.
양말이 젖지 않게, 발이 시리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도 미끄러지지 않게 등산화를 챙겨 신었다.
학교 가는 길에 눈을 밟고 싶어서 일부러 산길로 왔다.
방치된 길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꽤 다니는 곳인지 여기도 눈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도 설경을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눈 내린 숲 속, 그런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
눈 내린 풍경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무들이 힘겨워 보였다.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지 않은 상태에서 눈이 내리는 게 일상적인 겨울의 풍경이었나?
작년 재작년에 눈 내리던 풍경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난다.
보통 겨울엔 상록수만 잎을 남겨두니까 이렇게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설경이 낯선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심 튼튼하고 곧게 뻗어있는 나뭇가지 위에 눈이 예쁘게 쌓인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젯밤 우산을 쓰고 집에 가는데, 축축한 진눈깨비가 우산 위에 쌓였던 게 기억이 났다.
비는 우산을 타고 흐르는데 습기 많은 눈은 그렇지 않았다.
점점 무거워지더니 우산이 갸우뚱 갸우뚱 해서 중심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이 길을 걷는데 나무들도 참.. 간밤에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단풍튀김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무들을 관찰했다.
그런데 문득 단풍잎이 언 모습이 마치 단풍으로 튀김을 만든 것 같았다.
튀김보다는 액화질소로 얼린 모습에 더 가까우려나?
어, 액화질소는 영하 196도이고, 튀김은 170~180도 기름에 튀기는 게 보편적이라고 한다.
이 단풍나무는 온도로만 따지면 튀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단풍잎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바삭바삭 맛있어보이기도 했다.
모양을 잡아서 예쁘게 튀겨낸 단풍튀김!
근데 이런 게 존재할까 싶었는데
오사카에 있다고 한다...!
그러네, 깻잎도 튀겨먹는데.. 단풍나무에선 시럽도 나오니까 그 잎사귀는 더 맛있을지도 모르겠다.
내일 지나가다가 한 잎 베어먹어볼까..?
아무튼.. 얼어버린 단품 튀김에 슬픔을 표하며..
다들 눈길 조심하세요.
241128(목)
3. 우지끈
점심을 먹고 학교로 복귀하는데 곳곳에서 부러진 나무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남은 하루를 좀 착잡한 기분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 긴 세월을 잘 견뎌 오셨을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기둥을 만드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으려나.. 눈이 참 원망스러울 것 같다.
4. 나뭇가지 사이로
이미 눈이 그쳤는데 나뭇잎,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이 바람에 날려서 툭 툭, 후두두 아래로 떨어진다.
나무가 많은 쪽 길은 조심해서 걸어야한다.
눈 안 오는데 눈 피하기 복불복 게임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휘어진 나뭇가지 틈으로 길이 생기는데, 괜히 그 길을 걷고 싶어진다. (아래의 신사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언제 나뭇가지가 부러질지 모르는데.. 사람 마음이 참 그런 것 같다.
사실 오늘 아침에..
간밤에 쌓인 눈을 보며 남기는 글은 여기까지..!